『어린왕자』 를 읽고

최근에 주말에 밖을 나갈 수 없어 웹소설을 보고 있었다. 네이버의 『검 먹는 소드마스터』라는 소설인데, 제목은 좀 오글거리지만, 웹툰으로 보다가 기다리기 힘들어 소설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중간에 어린왕자의 내용을 각색한 부분이 나온다. 20대 초반에 어린왕자를 한번 읽은적이 있는데 그때는 크게 와닿는 내용은 아니어서 기억에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간접적으로 내용을 보며 다시한번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설을 끄고 교보문고에서 어린왕자 e-book을 바로 구매했다.

 

가격은 놀랍게도 990원이었다. 이 가격의 10배를 주더라도 후회없을 책이었다.

 

어린 왕자(한글판) | 생텍쥐페리

eBook 어린 왕자(한글판) |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는 한 이상한 소년을 만난다. 소년은 조종사에게 양을 그려 달라고 부탁한다. 소년은 자신이 사는 작은 별에 사랑하는 장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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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왜 안 보였을까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예전의 나는 이 책의 글자를 그냥 눈으로만 본 거였구나"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도, 여우가 하는 말도, 이야기의 한 장면으로 지나갔을 뿐이다.

이 책이 와닿지 않는다면 그건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읽는 사람이 아직 무언가를 충분히 잃어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왕자는 다시 읽어보니 대상 독자가 절대 어린이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독자가 살아온 만큼 읽히는 책이다.

 

길들인다는 것

이번에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부분은 여우가 나온 부분이었다.

여우는 길들여진다는 게 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여우 중 한 마리, 수많은 소년 중 한 명이었던 서로가, 서로에게만 특별한 존재가 되는 일. 

 

여우는 이런 말을 한다.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설렐 거야.

 

이 문장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만나는 그 순간만 좋은 게 아니라, 그 앞의 한 시간까지 통째로 물들어버린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떠올리면 너무나도 공감이 되는 한 문장이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졌다면 얼마간 눈물을 흘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알면서도 여우는 길들여지기를 선택한다. 이제 밀밭 색깔이 생겼으니 괜찮다고 말한다. 아플 걸 알면서도 시작하는 것, 그게 관계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담담하게 하는 동화가 또 있을까 싶었다.

 

네 장미가 중요한 존재가 된 건, 네가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내 장미가 특별한 건 그 꽃이 남들보다 예뻐서가 아니라, 내가 물을 주고 바람막이를 씌워주고 불평을 들어준 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대상의 성능이 아니라 내가 쏟은 시간에서 나온다. 이 문장을 스무 살에 읽었다면 그냥 예쁜 말이라고 넘겼을 것 같다. (그 때는 아직 연애를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으로 봐야 보인단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거든.

 

가장 유명한 문장이다. 너무 자주 인용돼서 오히려 닳아버린 문장 같았는데, 이야기 안에서 만나니 무게가 달랐다. 

또 읽으면서 뜨끔했다. 나도 요즘 무언가를 판단할 때 숫자부터 보고 있었던 것 같아서.

 

책을 다 읽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실 세계에서는 마음으로 본다는 것이 나는 아직은 불가능한 것 같다.

  

결말에 대해

마지막에 왕자가 사라지는 장면을 어떻게 읽을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 같다. 나는 두 사람이 서로를 길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조종사는 이제 밤하늘의 별이 더이상 흔한 별이 아니다. 원래는 아무 의미 없던 별들이, 길들여진 뒤에는 그 사람만 아는 사적인 풍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길들였기 때문에 상실이 생겼지만, 동시에 길들였기 때문에 완전한 상실은 아니게 되었다. 슬픈데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결말이었다.

 

마무리

어린왕자는 겉모습만 동화지 사실은 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어릴 때 읽고 "별로였다"고 기억하는 사람일수록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이 변한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이 변해서 다르게 읽히는 책이니까.

 

요즘은 짧은 영상이 넘쳐나고, 이런 이야기를 천천히 곱씹는 일이 잘 없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우연히 다른 소설에서 스친 문장 몇 개 때문에 책을 폈고, 두 시간쯤 걸려 다 읽었다. 990원, 두 시간. 이 정도 비용으로 이만큼 오래 남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은 오랜만이었다.

 

혹시 인용문으로만 어린왕자를 알고 있다면, 한 번쯤 직접 읽어봤으면 좋겠다. 문장만 떼어놓았을 때와,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이야기를 알고 읽을 때의 감정은 정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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