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의 입원 기록 (in 본바움 병원)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발목에 금이 갔다. MRI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속으로 계속 빌었다. 제발, 인대 손상까지만.

 

하지만, 결과는 골절이었다. 다리를 전문으로 보시는 선생님은 화면을 보시며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수술은 월요일에 가능한데, 그때까지 절대 움직이면 안 되니 지금 당장 입원하라고. 토요일 아침이었다.

 

골절이라는 사실과 입원이라는 사실이 한꺼번에 밀려오니 잠깐 정신이 아득했다. 그래도 짧은 시간에 생각을 했을 때, 집에 가면 화장실이든 부엌이든 발을 디딜 일이 끝도 없을 테고, 그러다 뼈가 어긋나기라도 하면 더 큰일이었다.

 

따라서, 별다른 고민 없이 입원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입원 상담을 받는데 비용이 생각보다 꽤 나왔다. 실비보험이 없었다면 다쳐도 그냥 자연치유가 정답인가 싶은 금액이었다. 다행히 회사에서 가입해 준 단체 실손보험으로 보장이 되는 부분이었다. 하마터면 생돈이 크게 나갈 뻔한 상황에서, 보험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몸으로 느꼈다.

 

입원 수속을 밟고 수술 전 필요한 검사를 다 마치니 어느새 오후 12시였다. 병실 침대로 돌아와 앉아 있으니 첫 병원밥이 나왔다. 솔직히 맛있진 않았다. 그렇다고 식욕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 딱히 다른 게 먹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뒤로 이어진 시간은 대부분 기다림이었고, 인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굳이 토요일에 입원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통원하면서 수술 준비를 하고 월요일에 들어와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건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다. 다음엔 이런 건 좀 더 알아보고 결정해야지, 하고 마음에 적어두는 정도로 넘기기로 했다.

MRI 사진

 

이 사진은 다시 봐도 너무 슬프다. 저렇게 심하게 금이갔다니...

링거를 달고 사는 삶

토요일 저녁, 링거를 맞기 위해 꽤 굵은 바늘이 왼쪽 팔에 깊이 들어왔다. 링거를 맞아본 게 처음이었는데, 5일 동안 가장 불편했던 걸 하나 꼽으라면 단연 이 링거였다. 어디를 가든 매달고 다녀야 하는 그 존재감이 삶의 질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한 번은 줄로 피가 역류하는 걸 보고 깜짝 놀라 간호사를 호출했는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말에 괜히 부끄러웠다.

 

병원의 아침은 정말 빨랐다. 왜 굳이 5시에 깨워서 검사를 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5시에 한 번 깨고, 7시 반쯤 아침밥에 또 한 번 깨고. 밤 12시에 잠들었다면 피곤한 게 당연한 구조인데, 이상하게 몸은 피곤함을 잘 느끼지 못했다. 링거 때문인지 몸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대신 낮에 할 게 없어서 틈틈이 잤다. 밥을 먹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저절로 눈이 감기고, 감으면 그대로 잠드는 그런 매직. 그렇게 하루가 뭉근하게 흘러갔다.

 

머리 감는 것부터 얼굴을 닦는 것까지 전부 불편했고, 샤워는 아예 불가능했다. 그러니 온몸이 씻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머리도 기름지고, 얼굴도 기름지고. 결국 아빠 찬스를 써서 5일 동안 머리를 세 번 감을 수 있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하겠던 일이었다. 그런데 옆자리 아저씨는 허리 수술에 무릎 수술까지 하시고도 혼자 머리를 감고 오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말이지 할 게 없어서, 나는 책을 읽고 블로그 글을 썼다. 다치면서 느낀 감정을 생각나는 대로 한 편 적었고, 빈 시간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펼쳤다. 완치되기 전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활동적인 것들을 한동안 못 할 텐데, 다음으로 좋아하는 독서와 글쓰기를 이참에 좀 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기간에 글도 많이 쓰고 책도 많이 읽어서 생각의 폭을 좀 넓혀봐야겠다.

소소한 선물

 

같은 파크에서 타는 친한 아저씨가 커피랑 쿠키를 사다 주셨다. 딸아이랑 같이 오셨는데, 인사하는게 너무 귀여웠다 ㅋㅋ.

나도 결혼하면 딸을 낳아야지... 아들은 나처럼 말썽이겠지?

 

창밖의 거리

내가 배정받은 자리는 창문에 딱 붙어 있는 자리였다. 8층이었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꽤 좋았다. 그런데 책을 읽고, 블로그 글을 쓰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밖을 볼 때마다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창밖으로는 내가 평소 자주 돌아다니던 거리가 보였고, 그 거리를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던 걸 지금은 못 한다는 사실이, 그 장면 앞에서는 유난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필 날씨는 또 어찌나 좋던지.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조금은 우울해졌다. 좋아하는 것들을 못 하니까.

 

그러다 문득, 병원에만 있어야 하는 모든 환자들이 어떤 기분일지 조금씩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환자들의 장면.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그 장면들이, 이제는 다시 본다면 공감이 될 것 같다. 같은 창인데 누군가에겐 풍경이고 누군가에겐 누리지 못하는 그림이라는 걸, 나는 그 8층 창가에서 처음 배웠다.

 

창밖 풍경

 

사소한 것의 즐거움

 

병원은 정말 재미가 없다. 할 게 없으니 누워서 휴대폰만 만지게 되는데, 그마저도 딱히 재미있지 않다. 일요일도 그렇게 무료하게 흘러갔다. 그래도 그날은 소소하게 웃긴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내 병실은 4인실이었는데, 나를 빼면 다들 이미 수술을 받으신 분들이었다. 나는 당연히 다들 걸어 다녀도 되는 줄 알았다. 워낙 잘 돌아다니셨으니까. 그래서 나도 아프지 않은 선에서 슬슬 돌아다녔다. 그런데 들어오신 간호사님의 말이 놀라웠다. 이 방 사람들 전부 움직이면 안 되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스물여덟에 잔소리를 듣고 있는데, 옆자리 분은 마흔다섯이셨다. 다 같이 한바탕 "걷지 마세요" 잔소리를 듣고, 그러고는 또 슬금슬금 걸어 다녔다. 남자들이란 참 말을 안 듣는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그렇게 한 번 더 돌아다니다가 간호사님께 딱 걸려서 곧장 휠체어로 끌려갔다. 여러 번 잔소리를 들어도 귀찮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수술을 하고 나서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 정말로 발을 디디면 큰일 날 것 같다는 감각이 생겨서, 휠체어를 한번 자의로 타봤는데 이게 또 너무 불편했다. 결국 그 뒤로는 그냥 한 발로 콩콩 뛰어다녔다. 나도 참, 다친 것부터 이미 말썽꾸러기인 것 같다.

 

강제 휠체어

 

수술실 앞에서

일요일 저녁,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아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다음 날이 수술이라는 사실이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날 밤 잠을 설치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 11시쯤 수술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이름과 어디를 수술하는지 물어보시는데, 내가 제정신인지 확인하려는 질문 같았다. 수술실 안에 들어서니 긴장이 훅 올라왔다. 잘못되면 어쩌지, 마취 주사가 아파서 내가 움직이면 어쩌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겁먹었던 것과 달리 마취 주사는 아프지 않았다. 주사와 거의 동시에 수면 마취가 진행되어서, 눈을 감았다 떴더니 이미 수술이 끝나 있었다. 끝나고도 이름을 한 번 더 물어봐 주셨고, 그렇게 원래 병실로 돌아왔다. 하반신에 감각이 하나도 없는 게 신기했다. 다리를 양옆으로 벌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진을 찍어보니 멀쩡한 정자세였다. 감각과 현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게 웃겼다.

 

살면서 수술이라는 걸 한번 언제 해보게 될까, 가끔 막연히 떠올리곤 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겪고 나니 신기하면서도 어딘가 씁쓸했다. 전날 밤부터 그렇게 걱정했는데, 막상 겪어보니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처음으로 마취를 하고 처음으로 수술대에 올랐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을 졸였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 수술실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까지 걱정할 것 없다고.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 어느새 다 지나가 있을 거라고.

 

하반신 마취 후

 

병실에서 업무를 보다

월요일은 수술도 있고 마취도 해야 해서 아까운 휴가를 하루 썼다. 다행히 토요일에 미리 매니저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움직이기 편해질 때까지 재택을 허락해 주셨다. 그래서 화요일은 병실에 앉아 일을 했는데, 이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침대에 앉아 다리를 뻗고 일하다 보면 발과 다리가 저려오고, 그렇다고 수술한 발을 바닥에 내리면 피가 쏠려 열감이 올라왔다. 다시 다리를 올리고, 이 자세 저 자세 다 취해봤지만 끝내 편안한 자세는 찾지 못했다. 그날 해야 할 일은 그래도 다 잘 마무리했다. 다만 앞으로 병원에 있을 때는 그냥 마음 편히 휴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병실은 일하기에 적합한 공간은 아닌 것 같다.

 

 

병원 후기

여기까지는 내가 느낀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도 병원에 대한 후기를 조금 남겨두면 나중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입원한 본바움병원은 집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서 골랐다. 최근에 개원한 정형외과 전문 병원이라, 가깝고 내게 필요한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별 고민 없이 선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더 알아보고 갔다면 더 나은 조건으로 입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번거로운 걸 싫어하고 단순하게 해결하고 싶은 사람이라, 이번엔 그 성향대로 움직였다.

 

좋았던 점부터 말하자면, 시설이 새것이라 전반적으로 쾌적했다. 건물도 침대도 선반도 다 새것이니 이용하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그리고 첫 입원이라 다른 병원과 비교할 기준은 없지만, 병원밥이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이건 언제 또 바뀔지 모를 일이지만.

 

불편했던 점도 솔직히 있었다. 병실이 조금 좁게 느껴졌다. 옆 사람과 커튼을 쳐도 틈으로 서로가 보일 만큼 가까웠고, 두 침대에 보호자 의자를 다 놓으면 지나갈 길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처음엔 몰랐는데 오래 지내다 보니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리치료도 그랬다. 10만 원짜리 비급여 치료를 안내받았을 때, 당시엔 그게 유일한 선택지인 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선택지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점들이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앞으로는 물리치료도 건강보험으로 처리되는 선에서 받아볼 생각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경험이고, 사람마다 느끼는 건 다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병원이 세로로 긴 구조라 검사를 받을 때마다 층을 옮겨 다녀야 했다. 환자가 적어서 다행이지, 많았다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다 썼을 것 같다. CT, X-ray, MRI를 찍으러 5층에 갔다가 3층으로 내려와 진료를 보고 또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 동선을 한 번 겪고 나면, 조금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적다 보니 결국 대부분 개인적인 불편함이긴 하지만, 그래도 병원을 고르기 전에 이런 정보를 미리 알고 간다면 다른 곳과 비교하기엔 좋지 않을까 싶다.

 

다시, 창가에서

4박 5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스케이트보드 위에서 즐거워 하던 나는 잠시 8층 창가에 묶여, 그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하나씩 다시 바라봤다. 마음대로 걷는 일, 뜨거운 물로 개운하게 씻는 일, 창밖의 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는 일. 전부 대단할 것 없어 보였던 일상인데, 못 하게 되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들이었는지 알게 됐다.

 

발이 다 나으면 나는 아마 또 스케이트보드를 탈 것이다. 다만 그전까지는,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붙잡고 이 시간을 건너보려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넓히면서. 이렇게 한 편의 글로 남겨두는 것도 그 시작이다. 언젠가 이 기록을 다시 읽을 때, 창밖만 바라보던 그 며칠이 그래도 꽤 괜찮은 시간이었다고 말하지 않을까?